연애 클리셰 스터디 29 : 여성의 축소지향


 

: 본 칼럼에서는 다양한 텍스트들을 통해, 픽션이 보여주는 연애의 법칙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연애가 얼마나 다른지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 상처와 고통을 겪기 전에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하나라도 얻어간다면 좋겠습니다.


: 주의! 드라마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TEXT: [구르미 그린 달빛], [푸른 바다의 전설] 외 여러 드라마

 

오늘은 작은 여자가 아름답다.” 를 외치는 위험천만한 클리셰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현실세계의 인간들은 성별을 막론하고, 다양한 크기와 체형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 다른 모양, 다른 무게, 다른 개성을 가진 것이 바로 인간이죠. 그런데도,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체형에는 몇 가지 정해진 공식만이 작동합니다.

 

예쁘고 하얗고 가늘가늘하면 여자주인공입니다. 보통 체형에 평범하고 덜 예쁘면 여자주인공의 친구죠. 예쁜데 매우 세련되고 부티나면 여자주인공의 라이벌이고요. 스타일 유행에 따라 생머리는 착한 주인공, 웨이브 머리는 악역 라이벌이 공식이던 시절도 있었죠.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여자주인공들은 제작발표회에서부터 여자주인공다운 미모와 체형을 준비해야 하고 기사사진을 통해 세월이 흘러도 조금도 늙지 않았고 약간도 살찌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획일적으로 정해진 체형 이미지가 드라마 세계에서만 작동하면 좋은데, 놀랍게도 현실 세계의 사람들도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처럼 마르고 예쁘고 늙지 않아야 한다 자기검열하고, 서로서로 결점을 보완하라 격려하며, 온 나라의 성형외과들이 미모의 완성을 돕겠다 열심입니다.

 

제가 다른 문화권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정말 놀라는 것 중 하나가, 키가 크거나 작거나 통통하거나 개성있게 생겨도 주인공이 되는구나, 하는 점입니다. 외모지상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문화권은 없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여성은 어리고 순진하고 무해하고 연약할수록 찬사를 받죠. 두상도 체형도 허리둘레도 나이도 작아야 합니다. 피부의 모공조차 감추어야 할 결점이 되고, 기미와 주근깨가 있는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죠.

 

이 모든 외모의 특징들이 수렴하는 지점은 소녀다운 여자입니다. 아이 같은 피부, 종잇장같은 체형, 애교 어린 말투, 큰 눈과 작은 얼굴, 일자이거나 팔자로 내려가는 눈썹 연출, 적당히 수줍은 애티튜드와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는 연약함. 이런 여성성이 프로토타잎으로 무한반복하여 제시되는 사회는, 소녀다운 여성뿐 아니라 청소년과 어린이를 성애화 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보는 이미지를 내면화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성역할을 만들어나갑니다모두가 비슷비슷해지고 있는데, 무엇이 잘못된 지도 모르고 있다면 큰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칼럼은 드라마의 클리셰를 찾아야 하니까, 드라마 속의 여자주인공들이 어떤 특징들을 매력적이다, 여성스럽다, 사랑스럽다, 라고 전시하는지 체크해보도록 합니다.

 

 

[클리셰 49 : 여성의 축소지향]

 

인간은 자신이 어떤 크기와 모양으로 자랄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대략적인 생물학적 경향성은 부모들이 보여주고 있겠지만, 자신에게 어떤 유전인자가 작동하고 비작동하는 지는 성장기가 끝나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지만, 미디어는 우리에게 바람직하게아름다운 모습을 유아 시절부터 끊임없이 주입합니다. 그래야, 외모가 관리하고 변경하여야 할 자산이 되고, ‘특정 아름다움이 권장되어야, 사람들이 자신의 완벽하지 못함에 신경 쓰느라 자연스러운 개성을 혐오하고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래야, 산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여성성아름다움은 마치 동의어인 것처럼 사용되고, 여자는 예뻐야 하고, 예쁘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고, 권력을 가진 자가 정한 예쁨만 예쁨이 되는, 어처구니없이 불합리한 상황이 공기처럼 만연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여자주인공들이 1. 작고 여리여리하다 2. 자주 쓰러지고 아프고 다치고 술 마시면 정신줄을 놓고 납치되고 위험에 빠지고 자기 몸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 3. 성장기 어린아이처럼 와구와구 먹지만 불가사의하게 날씬하다. 라는 공식으로만 존재해요.

 

이런 전제들을 보여주는 씬들은 보통 아래와 같아요.

 

1. 여자주인공한테 남성의 큰옷을 입혀서 귀여워하기.


2. 여자주인공의 허리가 한줌이어서 남주의 한 팔에 쏙 안기기.


3. 남주가 허니문 들기로 들었을 때, 가볍게 답싹 들리기.


4. 여자주인공의 키가 남주의 머리 하나 아래에 있기.


5. 밥을 엄청 많이 먹지만, 여전히 조그맣고 날씬하고 여리여리하기.


6. 자다 일어나도 완벽한 내츄럴 메이크업과 세팅된 헤어 하고 있기.


7. 아플 때 붓지도 않고 더욱 완벽하게 예쁘기.


8. 꼭 한번 이상은 병원 침대에 누워있기.


9. 술 마시면 정신줄 놓고 더욱 어린아이처럼 귀여운 짓을 하거나, 블랙아웃 되기.


10. 자신의 섹시함을 당당하게 어필하면 안 되고, 카메라의 시선에서만 의도치 않게 드러내기.

 

 

[실제 상황]

 

우리는 획일적인 아름다움에 오랜 세월 세뇌된 나머지, 늙지 않고, 살찌지 않고, 지나치게 크거나 작지 않기 위해 수많은 과학기술과 도구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의 여성들도 모두 자신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예쁘거나 예쁘지 않거나, 체형이나 체력이나 자기표현은 모두 선택할 바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외모의 개성이 존재하고, 몸의 주체로서 자신의 몸에 대해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선택들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인권운동과 페미니즘이 여성들의 의식을 깨우면서부터, 자신의 개성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를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사는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실의 우리들은 드라마 속 요정미 낭낭한 배우들이 아니며,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라고 각기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드라마와 다른 현실의 인간들은 이렇습니다.

 

1. 여성의 신체 사이즈는 다양합니다. 33 반을 입는다는 아이유 같은 체형도 있지만, 100kg가 넘는사람도 있고, 근육질의 여성도 있고,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여튼 인간이니까 다 다릅니다. 눈이 하나 없거나 팔이 하나 없을 수도 있고, 유전적 질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장애가 있거나 장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여성이 45kg일 리 없잖아요. 더 마르기 위해 다이어트를해야 한다, 그래야 여성스러워진다, 그래야, 예뻐진다, 그래야, 매력적이다, 그걸 누가 정합니까. 작고 여리여리한 미인의 체형에 자신의 몸을 구겨넣어서는 안 됩니다.

 

2. 허리 사이즈도 다 다릅니다. 체중도 다릅니다. 피부색도 다릅니다. 타고난 눈썹 모양도 다릅니다.키도 다릅니다. 남친과 키가 같거나 남친보다 키가 더 큰 사람도 있고, 몸무게가 더 무거운 사람도 있고, 허리 사이즈가 더 큰 사람도 있죠.

 

3. 식사량도 사람마다 다른데 식당 가면 여자라고 공기밥 작은 사이즈로 주면 화가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같은 돈 내고 적게 먹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밥을 와구와구 먹는 것이 습관인 사람도 있지만, 자주 먹고 적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먹는 만큼의 에너지를 몸을 불리는데 쓸 것인가운동하는데 쓸 것인가, 그것은 그 사람이 정하도록 합시다.

 

4. 혼자 있거나 자다 일어났을 때도 예쁘고 좋은 냄새 나고 샤랄라 하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수고로울까요. 모두가 얼굴천재로 태어나는 건 아니므로, 우리가 위생관리나 자기표현의 정도나 미모를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건 당연합니다. 특히 아플 때조차 예쁘라고는 제발 강요하지 맙시다.

 

5. 모든 여성들이 자주 아픈 건 아니며, 건강한 정도도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6. 음주량과 주사도 사람마다 다 다르며, 간의 해독능력도 다 다릅니다.

 

7. 섹시함을 얼마나 어필할 지, 얼마나 중요한 자기표현 주제로 사용할 지, 누구를 대상으로 자신의 섹시함을 보여줄 지는 각자가 결정할 바입니다. 여자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해서 시도때도 없이 성애의 대상으로 평가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대안 행동]

 

현실의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지는 각자가 결정할 바이고, 타인의 외모에 함부로 평가질을 하면 무례한 짓입니다. 작고 여리여리하며 청순하고 연약하고 아름다운 여성만 가치 있다고 정한 사람을 보면, 이제는 눈을 뜨라고 친절하게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하고더 이상 살을 찢거나 굶거나 뼈를 자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외출할 때의 준비 시간이 감당할 만하게 줄어야 하잖아요. 늙어도 마음이 편안해야 되잖아요. 노화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아야 하잖아요. 어리고 젊은 여성들이 언니들을 동정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나이가 든 여성들이 어리고 젊은 여성들을 부러워하거나 거리감 느끼지 않아야 하잖아요.

 

여성이 정해진 사이즈로 작아지게 만드는 모든 축소지향적 시도들은 비판 받아야 합니다. 이것으로 인해 누가 무엇을 얻는지 잘 보세요. 이득을 얻는 쪽은 당연히 작아지려고 애쓰는 당신은 아닙니다.

 

드라마 속의 로맨스가 다양한 체형과 체격과 미모와 나이를 가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이 시간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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