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3rd prescription_이런 것이 가정 폭력인가요?

F님 :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제가 우는 날이 많아지고 잘못했다고 비는 일이 생깁니다. 그는 날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희생해서라도 나를 더 성숙한 인간으로 고쳐주겠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저도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전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가요. 그 사람이 원하는 사죄의 방식이 있는데, 제가 그것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 욱하는 성격이 나올 때가 있는데, 저만 아니면 그럴 일이 없다고 해요. 나와는 언제까지나 행복하게만 살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저를 그저 내버려둘 수가 없대요.

아직까지 저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물건을 부수거나 벽을 치는 행동들이 나와요. 이런 정도로 가정폭력이라고 할 수 있나요.  


















(위는 요약내용입니다.)


 



F님, 엘입니다. 

욱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울부짖거나 쌍욕을 하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행동이 당연한 일일까요. 폭력의 형태는 다종다양한데, 막상 폭력의 대상이 되고 보면 이게 '폭력'이라고 이름붙일 만큼 대단한 일인지 무감각해지기도 합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대방의 모든 행동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은 물론, 정서적인 폭력, 경제적인 폭력, 성적인 폭력을 포함하여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알기 쉬운 예를 들어서 설명 드릴게요. 


1. 물리적인 폭력

1) 물건을 던지거나 부서뜨린다. 
2) 나의 신체 일부분을 찌르거나 툭툭 치거나 움켜잡거나 잡아끈다. 나의 의지나 동의와 상관없니 나의 신체를 함부로 만진다. 목을 조르거나 때리거나 밀치는 행동이 모두 폭력입니다. 
3) 칼이나 깨진 유리나 거울, 뾰족한 우산대나 지팡이, 골프채 등 위험한 물건으로 나를 위협하거나 상해를 입히려는 모든 시도가 폭력입니다. 


2. 정서적인 폭력

1) 나를 모욕하거나 나의 가족을 모욕, 욕설을 사용하여 나를 비난하고 지적하는 말과 행동도 폭력입니다. 
2) 눈을 부라리며 무서운 표정을 짓거나 손을 들어 때리겠다고 하거나, 앞으로 나에게 어떻게 하겠다 조건부로 원치 않는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도 폭력이고요. 
3)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지시하는 행동도 폭력입니다. 
4) 모든 가정가사를 나에게 맡기고, 완벽하지 않다고 일일이 간섭하고 제재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5) 사랑의 증거, 믿음의 증거, 충성의 증거를 강요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도록 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6) 내가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돌보도록 하거나, 동거를 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3. 경제적인 폭력

1) 내가 돈을 벌 수 없게 하면서도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일상적인 모든 소비를 감시하거나, 돈을 쓸 때마다 보고하게 하고, 그것으로 인해 나를 비난하고 탓한다면 폭력입니다. 
2) 가장이면서 돈을 벌지 않고 빚을 지거나,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강제적으로 벌도록 하는 행동도 폭력입니다. 
3) 동의없이 재산을 임의 처분하거나, 당장 쓰는 살림살이나 물건을 팔아도 폭력입니다. 


4. 성적인 폭력

1) 부부 혹은 동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성관계를 요구한다면, 폭력입니다. 
2) 피임을 한다고 속이고 피임하지 않는다면 폭력입니다. 
3) 원치 않는 형태의 성관계를 강요한다면 폭력입니다. 
4) 성적 매력이 없기 때문에 혹은 성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성매매를 하거나 다른 사람과 만나 성관계를 한다면 폭력입니다.  
5) 성관계를 거절하기 곤란하도록 몰아가서, 나에게 죄책감이나 모욕감, 수치심, 책임감을 지우려 한다면 폭력입니다.


5. 기타
1) 집에 안 들어오고 연락도 안 된다면, 그것 또한 방임이고 폭력입니다. 
2) 바람을 피거나, 그로 인해 거짓말을 하고, 결혼을 했는데 또 결혼하는 행동도 폭력입니다. 


F님. 

몸에 멍이 들고 피가 철철 나고 어디가 부러져야만 폭력이 아닙니다. 나의 몸과 마음이 불편하고, 상처를 받고, 동의없는 일이 자꾸만 일어난다면, 폭력입니다. 

사람이 변하였다면, F님이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모르던 초기에는 다정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쓴 채 나를 속이고, 이후 결혼을 하여 나를 본격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내가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혹은 성관계를 하거나, 임신을 하거나, 낙태를 하거나, 내가 여성의 몸으로 이러한 일을 겪었다고 해서, 마치 내 몸이나 신상이 자신의 소유라도 된 것처럼, 내 존재를 평가절하하고, 내 인생을 멋대로 조종하려 한다면, 폭력입니다. 

F님. 

나를 이러하다 저러하다 평가하고 그것으로 나를 조종하려 하면, 그 사람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위 예시에 해당하는 폭력이 계속된다면, 아래와 같은 대처가 가능합니다. 

1. 비밀일기를 쓰거나, 일지나 기록을 남겨서 원본과 사본을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보관하거나 지인에게 맡기세요. 스마트폰을 사용하신다면, 상황을 녹음하거나, 통화를 녹음하는 방식으로 파일을 만들고, 만들 때마다 카톡으로 지인에게 보내서 백업하게 하세요. 

2. 신체 외상이 있거나 물건이 파손되거나 집안이 아수라장이 된다면, 가까이서도 찍고 멀리서도 찍고 최대한 많이 찍어서, 원본과 사본을 보관 혹은 지인에게 맡기세요. 피부에 멍이 들거나 빨갛게 되거나 피가 난다면 상처도 찍고 얼굴이 나오게도 찍어야 해요. 즉시 병원에 가셔서 진료기록을 남기셔야 합니다.  

3. 112, 119 를 단축번호로 해놓고,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즉시 누르고 집주소를 말하세요. 근처 지구대에서 출동하면, 가정폭력이다, 중요한 일이다,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싶다 강조하셔야 합니다. 많은 가해자들이 경찰 앞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행동하여 그냥 돌려보내려 합니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4. 힘들고 아픈 일이 생기면, 신뢰할 수 있는 주변 지인에 꼭 이야기를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상담기관에 전화하셔서 상담이력을 남기셔야 합니다. 

5. 긴급전화번호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국번없이 1366 이 있습니다. 비밀보장이 되고, 긴급피난처 안내도 받을 수 있으니, 용기내서 연락을 해보세요.  

6. 근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이용하셔서, 평소 정신건강상담도 받아보세요. 이러한 기록들도 나중에 도움이 됩니다.  

7. 만약 핸드폰도 감시하는 상황이라면, 파일을 만들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전송하고 즉시 기록을 삭제하세요. 중요한 통화기록, 문자기록, 카톡기록, 파일전송기록을 신경써서 자주 삭제하세요. 내 사정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백업을 잘 하도록 부탁하세요. 피씨방에 다닐 수 있는 상황이라면, 비공개 블로그에 기록을 쌓아가셔도 괜찮아요. 

마음을 굳히신다면, 신고를 하고, 형사고소를 하거나, 이혼소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진행하는 동안 상담사, 활동가, 의사, 경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집을 벗어나서 어떻게 자립하나 나중에 나를 찾아와서 해코지 하지 않나 고민이 많으실 거예요. 하지만, 찾는 만큼 길은 나옵니다. 인간관계가 단절되신 분이나 경제활동을 해보지 않으신 분들도, 새로운 것들을 배우거나, 여러 보조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 받게 됩니다. 

F님.   

신고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질 때는, 상담만 받으셔도 괜찮습니다. 1366도 좋고, 정신건강증진센터도 좋아요. 사설 상담소도 초회 상담은 대부분 무료이니 꼭 이용해보세요. 기록만 남기셔도, 이후에 어떤 결정을 하실 때 훨씬 힘이 되십니다. 상담을 받을 때는 불면증이다 역류성 식도염이다 자주 체해서 간다 등 신체증상으로 간다고 알리바이 만드시고 편하게 상담 다니세요. 부부나 동거인이라도 절대 상담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습니다.  

F님. 

한번의 결혼, 이혼, 연애가 F님의 전체 삶을 망칠 수는 없습니다. 찾는 만큼 길이 나온다는 걸 믿으시고, 용기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덧글

  • 의지있는 펭귄 2017/09/11 16:34 #

    너무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내용을 담아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다행히도 연애중에 이런 일이 없었지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미리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내용을 많은 여성분들이 미리 공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이 아픕니다.. F님도 지금은 예전보다 덜 힘들고 더 행복하게 지내시고 계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2017/09/11 16:56 #

    저도 상담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을 겪고도 폭력인지 몰랐을 거예요. 실제로도 상담받으시는 도중에 자신이 존중받지 못했고 상대의 말과 행동이 폭력이라는 걸 겨우겨우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는 걸요. 다정한 마음 덧글로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덧글 남겨주셔서 저도 오늘은 열심히 처방전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굿데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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